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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시를 짓는 숲해설가 조남걸입니다.
시를 통해 옛이야기 속에 숨겨진 삶의 지혜와 역사를 되짚어보는 '시로 읽는 옛이야기 산책' 여섯 번째 시간입니다.
조선시대 통틀어 백성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지고 사랑받은 관리를 꼽으라면 단연 '암행어사 박문수(朴文秀)'일 것입니다. 부패한 관리를 엄벌하고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주었던 그의 통쾌한 활약상은 수많은 민담과 전설로 전해 내려옵니다. 오늘은 박문수 어사가 장터에서 우연히 받은 기이한 점괘와, 그 점괘 속에 숨겨진 죽음의 위기를 지혜롭게 넘긴 흥미진진한 일화를 자작시로 나누어 보겠습니다. 특히 한자의 획을 더하고 빼서 숨은 뜻을 찾는 옛 선비들의 '파자(破字)' 놀이가 이야기의 재미를 한층 더해줍니다.
1. 파자(破字)의 묘미와 암행어사 박문수의 지혜
우리 선조들은 한자의 글자를 해체하거나 합쳐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파자(破字)'를 즐겼습니다. 오늘 이야기 속 점쟁이가 박문수에게 건넨 두 줄의 한시 역시 이 고도의 파자 기법으로 암호화된 예언이었습니다.

첫 번째 줄인 **'黑龍寺中桂月枕 (흑룡사중계월침)'**은 "흑룡사라는 절에서 계월의 무릎을 베개 삼아 눕는다"는 뜻으로 훗날 일어날 상황을 정확히 묘사했습니다. 가장 소름 돋는 부분은 바로 두 번째 줄인 **'配年朋望怨(위에 한 일 획)無心 (배년붕망원무심)'**에 숨겨진 비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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配年(배년): 닭과 뱀을 뜻하는 글자를 조합하여 **기유년(己酉年, 1729년)**을 가리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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朋望(붕망): 달 월(月) 자 두 개가 나란히 있는 붕(朋)은 2월을, 망(望)은 보름을 뜻하여 2월 보름을 가리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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怨(위에 一 획)無心: 원망할 원(怨) 자 위에 한 일(一) 획을 더한 뒤, 밑에 있는 마음 심(心) 자를 없애면(無心), 놀랍게도 죽을 사(死) 자가 만들어집니다.
결국 이 점괘는 "기유년 2월 보름, 흑룡사에서 계월의 무릎을 베고 누울 때 죽음의 위기가 찾아온다"는 무서운 경고였던 것입니다. 2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아찔한 찰나의 순간에 이 복잡한 암호를 해독해 낸 박문수의 명석한 두뇌와 기지가 빛을 발하는 대목입니다.

2. [자작시]
- 암행어사 박문수*
암행어사 박문수가 어느 고을에서 국고금 천량을 횡령한 아전을 적발했다
국고를 횡령한 자는 갚을 때까지 옥에 가두거나 노비로 삼는다
그런데 아전이 옥에서 죽는 일이 있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어사가 장터를 돌아보다가 점을 보는 사람을 만났다
심심하던 차에 점을 보았다
점쟁이는 아무 말도 없이 종이에 글을 써서 주었다
黑龍寺中桂月枕
配年朋望怨**無心
어사가 점쟁이에게 아래 줄의 해석을 묻자
점쟁이가 “난들 아우” 하고는 다른 사람의 점을 보아 되물어 볼 수가 없었다
첫 줄의 뜻은 풀이가 되는데
다음 글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풀이가 안 됐다
이 년이 지났을 때 다시 암행어사를 제수받았다
어느 고을을 갔는데 모든 면에서 아주 일을 잘하는 원이 있었다
큰 상을 내려 달라는 상소를 올리고 기분 좋게 저녁 자리에서 술도 한잔했다
술자리에 예쁘고 가무에 뛰어난 계월이라는 기생이 있었다
어사는 계월에게 마음을 빼앗겨 함께 어느 절에서 밤을 보내게 되었다
달빛이 고운 밤 절에서 계월의 무릎을 베고 누웠는데 절 이름이 궁금했다
“이 절 이름이 무엇이냐”
“흑룡사라는 절이 옵니다”
“네 이름이 계월이라고 했지”
어사가 흑룡사 계월,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생각하다 이 년 전 장터에서 점을 본 기억을 떠올렸다
내가 흑룡사에서 계월의 무릎을 베고 누워있다, 그 점괘였다 그 다음은?
配年=己酉秊 朋望=月月望
怨無心=死
오늘이 기유년 이월 보름
마음이 없으면 죽는다,
어사가 몸을 일으켜 문을 열고 “이봐라 게 있느냐” 고 외치자 호위무사들이 달려왔다
“이 년을 끌어내어 포박하라” 하자 무사들이 계월을 밖으로 끌고 나가 포승줄로 묶고 꿇어 앉혔다
기생 계월의 품속에서는 비수가 나왔다
아비가 이 년 전에 어사에게 잡혀 옥에서 죽어 원수를 갚으려고 가무를 익히며 기다렸다고 했다
어사는 포박을 풀라고 명하고 방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내가 너희 아비를 벌한 것은 국법을 어긴 죄이지 나의 사사로움이 아니지 않느냐” 고 달랬다
어사는 계월을 후실로 삼고 극진히 사랑했다
*박문수(1691~1756) : 1723년 문과에 급제함. 1727년 암행어사를 시작했으며, 己酉年은 1729년으로 어사의 나이 39세임.
**怨 : 점쟁이가 써준 글자는 怨자 위에 한일(一) 획이 있는 글자였음.
3. 옛이야기 속 숨은 의미
- 공(公)과 사(私)를 엄격히 구분한 목민관의 자세
이 이야기의 결말은 단순한 복수극으로 끝나지 않고 묵직한 교훈을 던져줍니다. 비수를 품고 자신을 죽이려 했던 원수의 딸 계월에게 박문수가 건넨 한마디는 목민관(牧民官)으로서 그의 철학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내가 너희 아비를 벌한 것은 국법을 어긴 죄이지 나의 사사로움이 아니지 않느냐."
박문수는 아비의 죽음에 앙심을 품은 계월의 사사로운 원망(私)을 이해하면서도, 아전을 벌했던 것은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라 나라의 재물을 훔친 자를 벌하는 엄중한 국법(公)이었음을 당당히 밝힙니다. 공과 사를 명확히 구분하는 이 대쪽 같은 호연지기 앞에서, 복수심에 불타던 계월의 마음도 스르르 녹아내렸을 것입니다.

자신을 찌르려던 자를 참형에 처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녀의 효심과 억울함을 달래어 후실로 품어 안은 박문수의 대인배다운 풍모는 혀를 내두르게 합니다. 법을 집행할 때는 추상같이 엄격하되, 사람을 품을 때는 한없이 넓었던 암행어사 박문수. 그의 이야기가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며 큰 울림을 주는 이유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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