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옛이야기 산책

[시로 읽는 옛이야기 산책] 새벽닭 소리에 발길 돌린 아버지, 정(情)이 깃든 제삿밥 이야기

이천거북이 2026. 2. 27.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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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시를 짓는 숲해설가 조남걸입니다.
시를 통해 옛이야기 속에 숨겨진 삶의 지혜와 따뜻한 정을 나누는 '시로 읽는 옛이야기 산책' 다섯 번째 시간입니다.
현대에 들어서면서 유교 사상을 바탕으로 한 명절 차례나 제사 문화가 점차 옛이야기처럼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 우리 선조들에게 제사는 단순한 의식을 넘어, 돌아가신 부모님을 기리고 이웃과 음식을 나누는 따뜻한 나눔의 장이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저의 선친께서 생전에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며 들려주셨던 애틋하고도 신비로운 제삿밥 이야기를 한 편의 시로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죽어서도 길손을 배려한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위해 기꺼이 삶의 터전을 옮긴 아들의 지극한 효심을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1. 제삿밥에 담긴 조상들의 정(情)과 지극한 효(孝) 사상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우리의 제사 문화에는 보이지 않는 깊은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제사상에 올리는 음식, 즉 '제삿밥'은 단순히 귀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영적으로 교감하며 정을 나누는 매개체였습니다.
제삿상이 차려진 문경 이 씨의 사진이 걸린 방
특히 옛날에는 밤길을 걷는 나그네나 길손이 제사를 지내는 집에 들르면, 아무리 모르는 사람이라도 넉넉하게 제삿밥을 대접하여 보내는 아름다운 풍습이 있었습니다. 조상의 제삿날에 낯선 이에게 밥을 베푸는 것이 곧 조상에게 덕을 쌓는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충북 음성의 '높은뱅이' 고개와 경기 이천 율면의 '양하리'는 과거 한양으로 향하던 길손들의 발자취가 묻어있는 곳입니다. 인적이 드문 한여름 밤, 달빛에 의지해 고개를 넘던 길손에게 일어난 이 신비로운 만남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넘어 이어지는 부모의 내리사랑과 나그네를 챙기는 우리 민족 고유의 따뜻한 정서를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2. [자작시]

제삿밥

경상도 상주에 살던 김 씨가
어느 해 한양에 볼일이 있어 길을 떠났습니다
한여름이라 더위도 피할 겸 낮에는 그늘에서 쉬고 해가 지면 걸었습니다
괴산을 지나 음성 땅을 걷는데
한 사람이 따라와 동행이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문경에서 오는 이 씨라 했습니다

혼자 심심하게 걷던 차에
이야기를 나눌 길손이 생기고
보름달이 환하게 길을 밝혀 기분이 좋았습니다

높은뱅이* 고개마루쯤 왔을 때
마을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같이 걷던 이 씨가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나는 매년 여기만 오면 새벽닭이 울어 되돌아갑니다 여기서 조금 더 가면 양하리*란 마을에 불 켜진 집이 있으니 들려서 요기라도 하세요” 라고 당부를 했습니다

그 사람과 헤어진 후 얼마쯤 가니 정말로 불 켜진 집이 있어 주인을 찾았습니다
집주인이 나와 부친 제사를 막 마쳤다며 식사라도 하고 가라고 안내했습니다
방으로 들어가니 벽에 방금 헤어졌던 이 씨 사진이 걸려 있었습니다
김 씨가 저 사진 속의 사람이 누구냐고 묻자
집주인이 자기의 부친이라고 했습니다
김 씨는 조금 전까지 집주인의 부친과 같이 걸어오다가 닭이 울자 돌아갔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씨의 아들은 부친이 제삿밥도 못 드시고 가셨다고 안타까워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김 씨는 제사 음식으로 접대를 잘 받고 한양길을 떠났습니다
정성이 담긴 제삿밥 덕분인지 김 씨의 일이 술술 풀렸습니다

문경 이 씨 아들은
그해 부친이 제삿밥을 드실 수 있도록
높은뱅이에서 문경쪽으로 십 리쯤 되는 마을로 이사를 했습니다
죽어서도 마음을 베풀던 이 씨의 제삿밥 이야기가 온 고을에 퍼졌습니다

 

*높은뱅이 : 충북 음성군 금왕읍 내곡리에 있는 고개

*양하리 : 경기도 이천시 율면 산양2리 마을

 

3. 옛이야기 속 숨은 의미: 이승과 저승을 잇는 따뜻한 마음

새벽닭이 울면 영혼은 이승의 발길을 멈추고 저승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옛이야기 속 금기(禁忌)가 이 시에서는 아주 애절하게 다가옵니다. 문경에서 이천 양하리까지, 아들이 차려놓은 제삿밥을 먹기 위해 밤새 걸어왔을 아버지 이 씨의 영혼은, 높은뱅이 고개 마루에서 들려온 야속한 닭울음소리에 결국 발길을 돌려야만 했습니다.
길동무가 되어 걷게 된 상주 김 씨와 문경 이 씨
새벽닭이 울자 문경으로 되돌아 가는 미 씨
하지만 아버지는 자신이 굶주린 채 돌아가면서도, 동행했던 낯선 길손 김 씨에게 아들의 집을 일러주며 밥을 먹이고자 했습니다. 죽어서도 타인을 배려하는 그 넉넉한 인심 덕분이었을까요? 김 씨는 정성이 담긴 제삿밥을 대접받고 한양에서의 일도 술술 풀리게 됩니다. 선행이 낳은 또 다른 복(福)입니다.
제삿밥 드시고 가라며 안내하는 문경 이씨 아들
무엇보다 가슴을 울리는 것은 아들의 행동입니다. 아버지가 매번 새벽닭 소리에 쫓겨 제삿밥도 드시지 못하고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들은, 부친의 영혼이 조금이라도 편히, 그리고 일찍 도착하여 식사하실 수 있도록 미련 없이 문경 쪽으로 이십 리나 이사를 감행합니다. 오직 돌아가신 아버지를 향한 지극한 효심이 아니면 불가능한 결정입니다.
시대가 흘러 제사상은 간소해지고 차례의 형식은 사라져 갈지언정, 이 시 속에 담긴 부모의 깊은 사랑과 자식의 애틋한 도리만큼은 우리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아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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