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옛이야기 산책

[시로 읽는 옛이야기 산책] 서로의 결핍을 채운 동행과 박물군자의 지혜 : 약쑥의 기적

이천거북이 2026. 2. 22.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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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시를 짓는 숲해설가 조남걸입니다.
시를 통해 옛이야기 속 지혜와 삶의 가치를 되짚어 보는 '시로 읽는 옛이야기 산책' 두 번째 시간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크고 작은 결핍을 안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나의 부족한 점이 누군가의 도움으로 채워지고, 나의 남는 것이 타인의 부족함을 채워줄 때 우리는 상상하지 못한 기적을 마주하곤 합니다.
오늘은 서로의 눈과 다리가 되어준 두 친구의 아름다운 동행과, 사물의 진정한 쓰임새를 알아보는 박물군자(博物君子)의 안목에 대한 이야기를 시로 나누어 보겠습니다.
 

1. 해풍을 맞고 자란 '약쑥'의 가치와 상생(相生)의 지혜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쑥을 아주 귀한 약재로 여겼습니다. 그중에서도 바닷바람(해풍)을 맞고 자란 약쑥은 생명력이 강하고 독성이 적으며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성질이 있어 으뜸으로 쳤습니다. 동의보감에도 쑥은 따뜻한 성질을 가지고 있어 백 가지 병을 구한다고 기록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오늘 소개할 옛이야기에는 이 귀한 약쑥과 함께 두 명의 청년이 등장합니다. 한 명은 앞을 보지 못하지만 부지런한 청년이고, 다른 한 명은 앞은 볼 수 있지만 다리가 불편해 걷지 못하는 청년입니다. 혼자서는 삼백 리나 떨어진 약재 시장에 갈 수 없었던 두 사람은 서로에게 부족한 것을 내어주기로 합니다. 걷지 못하는 친구는 길을 안내하는 '눈'이 되어주고, 앞을 못 보는 친구는 짐을 지고 걷는 '다리'가 되어준 것입니다.
해풍을 먹고 자란 약쑥을 채취
이를 한자어로는 '상생(相生)'이라고 합니다. 둘 이상이 서로 북돋우며 다 같이 잘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지게 위에 약쑥을 얹고, 그 위에 다리가 불편한 친구를 태운 채 사흘 밤낮을 걸어간 두 사람의 여정은 그 자체로 이미 아름다운 상생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간절하고도 따뜻한 동행 속에서 약쑥은 아주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냅니다.

2. [자작시]

  - 박물군자 2

 
바닷가 마을에
앞을 못 보는 젊은이가 살았어요
마음씨가 착하고 남을 잘 도와주어
마을 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했지요
 
앞을 보지 못하지만 부지런하여
해풍을 맞고 자란
약효 좋은 약쑥을
열심히 베어 팔곤 했지요
 
어느 날 옆집에 사는 친구가 찾아 왔어요
친구는 어렸을 때 병을 앓아
앉은 자세만 할 수 있었지요
일어서거나 걷지 못했지요
친구는 약쑥을 약재시장에 팔러가자고 제안을 했어요
"직접 판매하면 비싸게 팔 수 있으니
지게에 약쑥을 얹고 그 위에 나를 올려주게, 나는 앞을 볼 수 있으니 길을 안내하고, 자네는 당당하게 걸어가게, 노자는 내가 부담하겠네, 그 대신 약제시장 근처에 있는 누님댁에 나를 데려다 주게"
좋은 생각이라 두 동무는 날을 잡아 약제시장으로 출발했어요
 
삼백리나 되는 길을 가는데 짐을 졌고
앞을 보지 못하니 더딜 수 밖에 없었지요
사흘이나 걸려서 약제시장 근처 누님댁에 도착했어요
약제시장에서 순서를 기다려 약쑥의 가격을 판정할 차례가 되었지요
박물군자가 약쑥을 살펴보고 입을 열었어요
"이 약쑥은 약효가 없으니 불쏘시개나 하게, 약값은 오늘 팔린 가장 높은 약쑥가격의 열배를 앉은뱅이에게 받으시게"
박물군자가 이상한 말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어쩔수 없었어요
약쑥을 팔지도 못하고 터덜터덜 친구네 누님댁으로 갔지요
대문을 들어서는데 친구가 달려와서 와락 안으며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어요
"내가 이렇게 일어서서 걸을 수 있네, 친구 덕이네, 이 은혜 평생 잊지 않고 갚을게, 고맙네"
그제서야 박물군자가 약쑥값을 친구에게 받으라는 말이 이해가 되었어요
두 친구는 더 사이좋게 오래오래 살았답니다
 

3. 옛이야기 속 숨은 의미

  - 서로의 결핍을 채워 이뤄낸 기적

사흘 동안 지게 위에서 약쑥을 깔고 앉아있던 친구는 어떻게 스스로 자리에서 일어나 걸을 수 있게 된 것일까요? 바로 지게에 실려있던 해풍 맞은 약쑥의 강렬한 약효가, 사흘 밤낮에 걸쳐 친구의 몸속으로 고스란히 스며들었기 때문입니다.
약쑥 위에 태우고 길을 안내하며 걷는 친구들
약재 시장에 도착했을 때, 세상의 온갖 이치를 꿰뚫어 보는 박물군자는 이 사실을 단번에 알아보았습니다. 약쑥의 겉모습은 그대로였지만, 그 안에 담겨 있던 치유의 기운은 이미 지게 위에 타고 있던 친구의 굳은 다리를 고치는 데 모두 쓰였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렇기에 약쑥은 불쏘시개가 되었지만, 친구의 평생 병을 고쳐주었으니 그 값은 가장 비싼 약쑥의 열 배를 받아도 마땅하다고 판정한 것입니다.

약쑥 효능으로 걷게 된 친구와 기쁘게 포옹하는 친구들

첫 번째 이야기의 동자삼이 마을 사람들을 위해 스스로 기운을 소진했다면, 두 번째 이야기의 약쑥은 서로를 돕고자 했던 두 청년의 따뜻한 우정 속에서 가장 값지게 쓰였습니다. 자신의 눈과 다리를 기꺼이 내어준 두 사람의 선한 마음이 없었다면 약쑥의 기적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눈앞에 보이는 물질적인 결과(약쑥을 팔아 얻게 될 돈)에만 집착하곤 합니다. 하지만 박물군자의 시선은 늘 결과 너머의 '과정'과 '보이지 않는 가치'를 향해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를 통해, 부족함을 탓하기보다 서로의 결핍을 보듬어 안고 상생하는 삶의 태도를 다시금 마음에 새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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