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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시를 짓는 숲해설가 조남걸입니다.
시를 통해 옛이야기 속에 숨겨진 삶의 지혜와 사물의 이치를 되짚어보는 '시로 읽는 옛이야기 산책' 네 번째 시간입니다.
길고 추웠던 겨울이 지나고 높은 산에 아직 잔설이 남아있을 무렵, 우리 발밑에서는 아주 경이로운 일이 벌어집니다. 얼어붙었던 딱딱한 땅을 뚫고 여리고 작은 잡초들이 바늘처럼 뾰족뾰족 고개를 내미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잡초를 쓸모없고 귀찮은 존재로 여겨 함부로 뽑아버리곤 합니다. 하지만 만물의 이치를 꿰뚫어 보았던 토정 이지함 선생의 눈에는 이 작은 봄 잡초가 아주 특별하게 보였던 모양입니다. 오늘은 천하의 기인이자 백성들의 삶을 살폈던 이지함 선생과, 생명을 살려낸 '봄 잡초'에 얽힌 일화를 자작시로 나누어 보겠습니다.
1. 언 땅을 뚫고 나오는 봄 잡초의 강인한 생명력과 양기(陽氣)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이른 봄에 가장 먼저 땅을 뚫고 나오는 식물들에 엄청난 생명력과 양기(陽氣)가 응축되어 있다고 믿었습니다. 꽁꽁 얼어붙은 흙을 밀어 올리는 힘은 그 어떤 보약과도 바꿀 수 없는 자연의 위대한 에너지입니다.
따뜻한 온실에서 자란 화초는 연약하지만, 매서운 추위와 눈보라를 견뎌내고 스스로의 힘으로 지각을 뚫고 올라온 봄 잡초는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강렬한 기운을 품고 있습니다. 한의학이나 민간요법에서도 봄철에 돋아나는 쑥이나 냉이 같은 들풀들을 만물이 소생하는 기운을 담은 귀한 약재로 여겼습니다. 몸속의 막힌 기운을 뚫어주고, 피를 맑게 하며,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역할을 한다고 본 것입니다.
오늘 이야기 속에서 토정 이지함 선생이 대문 옆 화단에서 뽑고 있던 바늘 같은 잡초 역시, 혹독한 겨울을 이겨낸 끈질긴 생명력의 결정체였습니다. 선생은 이 잡초가 가진 '뚫고 나오는 맹렬한 힘'을 정확히 꿰뚫어 보았고, 이것이 곧 막힌 생명(난산)을 순조롭게 세상 밖으로 끌어내는 신묘한 약이 될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2. [자작시]
- 토정비결을 만든 이지함 선생의 혜안 2
높은 산에 잔설이 남아 있는
봄이 막 시작되는 때였다
이지함 선생이 아침 일찍
대문 옆 화단에서
바늘처럼 뾰족뾰족 올라온 잡초를 뽑고 있었다
뽑은 잡초를 버리지 않고
왼손에 모아 한 움큼쯤 되었을 때
윗마을에 사는 젊은이가
헐레벌떡 가쁜 숨을 몰아쉬며 뛰어 왔다
"선생님 선생님 큰일 났습니다"
"난리가 났나, 무슨 큰일인가"
"저희 집사람이 어제저녁부터 애를 낳느라고 용을 쓰는데 나오질 않습니다"
"잡초도 언 땅을 뚫고 나오는데 뚫어진 구멍으로 못 나올까"
"자 이것을 씻어서 달여 먹이게" 하며 뽑고 있던 풀을 내어 주었다
"네, 선생님 고맙습니다" 하며 인사하고 왔던 길을 뛰어갔다
선생이 아침상을 물리고 나니
윗마을 젊은이가 다시 왔다
"주신 약 달여 먹였더니 잘 낳아서
산모도 아이도 건강합니다"
좋아서 입이 귀에 걸리도록 환하다
"선생이 아들이지" 하며 툇마루 한켠에 준비해 놓았던 미역과 쌀자루를 내어 주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며 연실 머리를 조아렸다
선생은 봄 잡초가 가진 힘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날 이후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의 잡초 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한다
3. 옛이야기 속 숨은 의미
- 만물의 이치를 꿰뚫어 본 참된 안목
"잡초도 언 땅을 뚫고 나오는데 뚫어진 구멍으로 못 나올까." 이 짧은 한마디에 토정 이지함 선생의 철학과 깊은 통찰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선생은 난산으로 생명이 위태로운 절박한 순간에, 멀리 있는 귀한 약재를 찾지 않았습니다. 대신 지금 자신의 손에 쥐어진, 꽁꽁 언 땅을 기어코 뚫고 올라온 잡초의 맹렬한 기운을 산모에게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닫힌 땅을 여는 자연의 이치와, 닫힌 산도를 열고 새 생명이 탄생하는 이치가 결코 다르지 않음을 안 것입니다. 잡초 달인 물을 마신 산모는 그 억센 생명력을 고스란히 이어받아 무사히 아이를 낳을 수 있었습니다.

더욱 놀랍고 감동적인 것은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이미 순산할 것을 내다보고, 심지어 태어날 아이가 아들인 것까지 헤아려 툇마루에 미역과 쌀자루를 준비해 둔 선생의 따뜻한 배려는 긴 여운을 남깁니다. 백성을 사랑하는 어진 마음(仁)과 만물의 이치를 통달한 지혜(智)가 만났을 때, 길가에 버려질 뻔한 잡초 한 움큼은 새 생명을 구하는 기적의 명약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평소 주변에 있는 작고 흔한 것들의 가치를 쉽게 지나치곤 합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듣고 난 후 마을 사람들의 잡초 보는 눈이 달라졌듯, 세상에 허투루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쓸모없어 보이는 작은 풀 한 포기에도 저마다의 위대한 생명력과 쓰임새가 있음을, 이른 봄 땅을 뚫고 나오는 새싹들을 보며 다시금 마음에 새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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