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잎을 다 떨군 앙상한 겨울 숲, 모든 생명이 숨을 죽일 때 홀로 초록을 품고 모진 바람을 견뎌내는 강인한 삶이 있습니다. 겨울을 능히 이겨낸다 하여 이름 붙여진 인동(忍冬). 지방에 따라서는 인동초(인동덩굴) 또는 연동줄이라고도 부르는 인동과(Caprifoliaceae)의 반 상록성 덩굴성 나무입니다.

함경도를 제외한 한반도 전역의 양지바른 산기슭이나 숲 가장자리에서 나무와 바위를 감아 오르며 살아가는 인동초는, 화려함보다는 '끝까지 살아남는 것의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몸소 보여줍니다. 겨울의 풍상을 이겨낸 인동초의 숭고한 정신과 변치 않는 사랑을 노래한 자작시를 먼저 올립니다.

[자작시]
인동초
잎을 떨구어 앙상한 나무들 사이
몸속의 초록마저 숨기고 있었다
바람이 흔들어 줄기를 꺾어놓아도
기어코 몸을 틀며 감아 오르는 덩굴
사랑이란 어쩌면 그런 것인지
연한 녹색의 햇가지
세월의 흔적처럼 붉은 갈색으로 깊어지고
세로로 갈라진 상처마저 나이테로 품는다
그 모습 오래 울고 난 사람의 손등 같다
초여름 하얗게 피어난 꽃들이
노랗게 변해가는 건
처음의 순정과 끝내 익어가는 그리움이
한 품에 머무는 까닭일까
은빛 마음으로 시작해
금빛 인연으로 남는 꽃
향기는 멀리 날아가지 않고
가까운 이의 마음에 오래 스민다
열 오른 상처를 식히고
곪은 아픔을 달래며
누군가의 밤을 견디게 했다는 이야기처럼
화려함보다 끝까지 살아남는 것이 아름답다
눈 속에서도 푸른 잎을 놓지 않는 건
모진 계절을 통과하면서도
끝내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것
숲 가장자리 낮은 바람 속에서
떠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끝까지 지켜주고 싶은 것이다
세상은 빨리 잊으라 말하지만
오래 견딘 아픔이 향기가 된다는 것을

1. 인문학적 이야기 : 은빛 순정에서 금빛 인연으로, 그리고 변치 않는 삶의 궤적
인동덩굴의 꽃말은 “사랑의 인연, 헌신, 변치 않는 사랑”입니다.
5~6월이 되면 잎겨드랑이에서 하얗게 피어난 꽃이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노랗게 변해가는데, 한 가지에 흰 꽃과 노란 꽃이 사이좋게 섞여 피어있는 모습이 참으로 이채롭습니다.

그래서 한방에서는 이 꽃을 '금은화(金銀花)'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부릅니다.
위의 시구처럼, 하얀 꽃이 노랗게 변해가는 것은 “처음의 순정과 끝내 익어가는 그리움이 한 품에 머무는 까닭”일 것입니다.
은빛의 맑은 마음으로 시작해 결국엔 금빛의 성숙한 인연으로 완성되는 인동초의 사랑은, 가벼운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는 현대인들에게 묵직한 울림을 줍니다.
또한 인동초는 현대사에서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일어선 인물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갖은 풍상(風霜)과 옥고를 겪으면서도 끝내 자신의 신념을 지켜내며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이 되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가리켜 사람들은 '인동초'라 불렀습니다.

꺾일지언정 기어코 몸을 틀어 감아 오르고, 세로로 갈라진 상처마저 나이테로 품어 안는 그 강인한 덩굴의 생명력은 시대를 위로하는 가장 아름다운 향기가 되었습니다.

2. 식물학적 특징과 생태 정보
인동덩굴은 주변의 환경에 기대어 살아가면서도 자신만의 뚜렷한 삶의 방식을 잃지 않는 나무입니다.
-
줄기와 잎의 성정 : 줄기는 신기하게도 항상 오른쪽으로 감아 올라가며 자랍니다. 연한 녹색이었던 햇가지는 세월이 흐르며 붉은 갈색으로 깊어지고, 오래 묵으면 허연 갈색으로 껍질이 세로로 벗겨집니다. 마주나는 타원형의 부드러운 잎은 가을이 오면 일부는 떨어지지만, 일부는 모진 눈보라 속에서도 푸름을 유지한 채 겨울을 납니다.
-
꽃과 열매 : 초여름에 피어나는 3~4㎝의 꽃은 은은하고 깊은 향기를 풍깁니다. 암술 1개와 수술 5개가 함께 나오며, 꽃부리는 종 모양으로 끝이 5갈래로 갈라져 그중 4개는 꼿꼿이 서고 1개는 혓바닥처럼 아래로 처지는 독특하고 기품 있는 모양새를 지녔습니다. 꽃이 지고 난 가을 9~10월이 되면 지름 7~8㎜의 둥글고 윤이 나는 검은색 열매가 맺힙니다.

3. 우리 곁을 지켜준 쓰고 시린 약성과 주의점
인동초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버릴 것이 없는 귀한 약재로 우리 선조들의 열 오른 상처를 식히고 곪은 아픔을 달래주었습니다.
다만, 약간의 독성이 있으므로 오래 복용하는 것은 좋지 않으며, 쇠붙이가 닿으면 약성이 떨어지므로 달일 때 유의해야 합니다.

-
인동등(忍冬藤 - 줄기) : 가을에서 겨울 사이에 채취하여 햇볕에 말려 사용합니다. 고열이나 더위 먹은 데, 급성 간염, 심한 종기가 났을 때 말린 줄기 20g을 물 700㎖에 달여 마셨으며, 입안의 염증이나 곪은 상처에는 달인 물을 환부에 직접 바르기도 했습니다.
-
금은화(金銀花 - 꽃) : 여름에 채취하여 햇볕에 말려 씁니다. 기침감기나 장염, 후두염, 땀띠, 치질 등에 말린 꽃 15g을 물 700㎖에 달여 마셨습니다. 약용 외에도 선조들은 녹차에 이 고운 꽃을 띄워 달콤하고 우아한 금은화차의 향기를 즐겼습니다.
-
은화자(銀花子 - 열매) : 가을에 열매를 채취하여 살짝 볶아서 약으로 씁니다. 장이 지쳐 발생하는 붉은 설사(이질) 증세에 볶은 열매 10g을 물 700㎖에 넣고 달여 마시면 효험이 있었습니다.

마치는 글
세상은 온통 화려하고 빠르게 변하는 것들에 눈길을 주며, 아픔은 서둘러 잊으라고 다그치곤 합니다.
그러나 숲 가장자리 낮은 바람 속에서 눈 속의 푸른 잎을 끝내 놓지 않는 인동초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진정한 향기는 오래 견딘 아픔 속에서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떠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끝까지 지켜주고 싶어 그 자리에 상처를 품고 서 있는 인동초처럼, 이번 초여름에는 내 곁의 소중한 이들에게 은빛 순정으로 시작해 금빛 인연으로 남는 변치 않는 마음을 전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반응형
'시로 읽는 숲과 꽃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시로 읽는 숲과 꽃이야기] 무너지지 않을 틈에서 피워낸 고결한 불꽃, ‘참나리’ (2) | 2026.07.11 |
|---|---|
| [시로 읽는 숲과 꽃이야기] 날마다 다시 피어나는 눈부신 나라, ‘무궁화’ (2) | 2026.06.30 |
| [시로 읽는 숲과 꽃이야기] 침묵을 깨고 피어난 한 송이 커다란 마음, ‘작약’ (2) | 2026.05.21 |
| [시로 읽는 숲과 꽃이야기] 화려함 뒤에 숨겨진 서늘한 위로, 꽃의 왕 '모란(牡丹)' (0) | 2026.05.12 |
| [시로 읽는 숲과 꽃이야기] 하얗게 피어난 간절함, 이팝나무 (White Fringetree) (3) | 2026.05.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