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 27

[시로 읽는 숲과 꽃이야기] 얼음을 뚫고 솟아오른 작은 해, 복수초(福壽草)

추운 겨울이 아직 대지를 쥐고 있을 때, 언 땅과 눈을 녹이며 가장 먼저 샛노란 얼굴을 내미는 꽃이 있습니다. '영원한 행복'과 '장수'를 기원하는 이름표를 달고 온 봄의 첫인사, 바로 '복수초(Adonis amurensis)'입니다. 1. 눈을 녹이고 피어나는 '얼음새꽃'복수초는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스스로 열을 내어 주변의 눈을 녹이며 피어납니다. 그 강인하고 경이로운 모습 덕분에 '눈색이꽃', '얼음새꽃'이라 불리기도 하고, 눈 속에 핀 연꽃 같다고 하여 '설연(雪蓮)'이라는 고결한 별명도 가지고 있습니다.우리나라 산지에서 만날 수 있는 복수초는 크게 세 종류로 나뉩니다.복수초 : 해발 800m 이상의 높은 산지에서 드물게 자라며, 잎보다 꽃이 먼저 피고 줄기가 갈라지지 않는 것이 특징입니다. 개복..

[시로 읽는 숲과 꽃이야기] 연보랏빛 입술로 전하는 다정한 위로, 깽깽이풀

숲이 겨울의 묵은 때를 털어낼 즈음, 낙엽 사이로 잎보다 먼저 연보랏빛 맑은 꽃망울을 터뜨리는 앙증맞은 식물이 있습니다.이름은 수다스럽고 개구쟁이 같지만, 그 자태만큼은 숲속의 요정처럼 신비롭고 청초한 매자나무과의 여러해살이풀, '깽깽이풀(Jeffersonia dubia)'입니다.1. 연잎을 닮은 동그란 잎과 맑은 꽃깽깽이풀은 줄기 없이 뿌리에서 잎과 꽃자루가 바로 올라옵니다.3~4월이면 2cm 남짓한 연한 보라색 꽃이 6~8장의 동그란 꽃잎을 달고 수줍게 피어납니다.꽃이 지고 나면 돋아나는 잎사귀도 무척 매력적인데, 마치 연꽃잎을 축소해 놓은 듯 동그랗고 가장자리가 물결칩니다.잎 표면에 광택이 있어 물방울이 떨어지면 스며들지 않고 또르르 굴러떨어지는 모습이 무척 싱그럽습니다.2. 한 발로 깽깽? 기침 ..

[시로 읽는 숲과 꽃이야기] 봄꽃 축제의 시작, 산수유(山茱萸)

봄이 오면 잎보다 먼저 가지마다 노란 꽃을 피워 올리며 숲의 문을 여는 나무가 있습니다. 지난번 만났던 생강나무와 닮았지만, 조금 더 여유로운 꽃자루를 내어 맑은 햇살을 머금는 꽃. 바로 층층나무과(Cornaceae)의 낙엽성 소교목, '산수유(山茱萸)'입니다.1. 붉은 보약, 단단한 씨앗을 비워내다봄에는 눈부신 노란 꽃으로 사랑받지만, 가을이면 작은 대추처럼 붉게 익는 열매가 산수유의 진면목입니다.산수유 열매는 사향, 당귀, 녹용과 함께 그 유명한 '공진단'의 주재료로 쓰일 만큼 약효가 뛰어납니다. 동의보감에도 신장과 생식기능 감퇴, 요통, 이명 등에 큰 효과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성질이 온화하고 독이 없어 널리 쓰여 온 귀한 약재입니다.하지만 몸에 좋은 과육과 달리 씨앗에는 '렉틴'이라는 독성 ..

[시로 읽는 숲과 꽃이야기] 앙상한 가지 끝에 터진 동그란 숨결, 생강나무

겨울의 끝자락, 산에 오르다 보면 메마른 회갈색 가지에 노랗고 몽글몽글한 꽃송이들이 바짝 붙어 피어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땅 어디서나 가장 먼저 봄을 알리며 알싸하고 따뜻한 향기를 내어주는 나무, 바로 '생강나무'입니다.1. 산수유와 꼭 닮은 봄의 쌍둥이 구별법3월에 노랗게 피어나는 생강나무꽃(녹나무과)은 같은 시기에 피는 산수유꽃(층층나무과)과 무척 닮아 헷갈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뚜렷한 차이가 있습니다.꽃의 위치 : 산수유는 꽃자루가 길어 꽃들이 여유롭게 피어나는 반면, 생강나무는 가지에 바짝 붙어 작은 공처럼 옹기종기 모여 핍니다.줄기와 가지 : 산수유나무 줄기는 갈색에 껍질이 거칠게 벗겨져 있지만, 생강나무는 줄기가 매끄럽고 끝이 녹색을 럅니다.2. 가난한 서민들의 빛이..

[시로 읽는 숲과 꽃이야기] 향기 없는 노랑으로 만 리에 닿다, 만리화(萬里花)

이른 봄, 산자락을 노랗게 물들이는 꽃을 보면 흔히 개나리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개나리보다 조금 더 크고 잎이 둥글며, 무엇보다 훨씬 더 시리고 선명한 노란빛을 띠는 꽃이 있습니다. 이름만 들으면 세상에서 가장 짙은 향기를 품었을 것 같은, 하지만 정작 향기는 품지 않은 반전의 꽃, '만리화(Forsythia ovata Nakai)'입니다. 1. 이름 속에 담긴 아이러니, 향기 없는 만리화이름의 유래 : 만리화萬里花라는 이름은 '꽃향기가 만 리까지 퍼진다'는 뜻에서 붙여졌습니다. 하지만 실제 만리화는 향기가 거의 없습니다. 짙은 향기를 기대하고 다가갔다가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그 속에는 어쩌면 향기보다 더 오래 남는 '존재의 증명'이 숨어있는지도 모릅니다.한반도 고유 특산종 : 물푸레..

[시로 읽는 숲과 꽃이야기] 눈 속에서 길어 올린 맑은 향기, 매화(梅花)

겨울이 아직 다 물러가지 않은 이른 봄, 마른 가지 끝에서 가장 먼저 맑은 향기를 터뜨리는 꽃이 있습니다. 옛 선비들이 난초, 국화, 대나무와 함께 사군자(四君子)로 꼽으며 그 고결한 절개를 사랑해 마지않았던 꽃, 바로 '매화(梅花)'입니다. 1. 매실나무가 피워내는 다채로운 봄의 얼굴우리가 흔히 '매화나무'라 부르는 이 나무의 정식 명칭은 장미과에 속하는 '매실나무'입니다. 봄에는 매화꽃을 피우고, 여름에는 매실이라는 유용한 열매를 맺지요.색과 형태 : 붉은 꽃을 피우면 '홍매화', 흰 꽃을 피우면 '백매화'라 부릅니다. 백매화 중에서도 꽃받침이 녹색을 띠는 것을 '청매화'라 하여 조선의 선비들은 이를 으뜸으로 쳤습니다. 겹꽃으로 풍성하게 피어나는 '만첩홍매'와 '만첩백매'도 화려한 자태를 뽐냅니다...

[시로 읽는 숲과 꽃이야기] 겨울의 심장, 뜨거운 저항으로 피어난 동백꽃

모든 생명이 숨을 죽이는 동토의 계절로 가는 11월 말부터 홀로 붉은 불을 밝히는 꽃이 있습니다. 하얀 눈밭 위에서 가장 돋보이는 강렬한 색채의 마술사, 바로 '동백꽃(Camellia japonica L)'입니다.1. 동박새를 부르는 겨울 숲의 등불동백나무는 차나무과(Theaceae)에 속하는 상록성 교목으로, 남해안과 제주도 등지에서 주로 자랍니다.곤충이 없는 한겨울에 꽃을 피우기에, 꽃가루받이를 새에게 맡기는 대표적인 조매화(鳥媒花)이기도 합니다. 이때 동백의 꿀을 찾아 날아드는 단짝이 바로 '동박새'이지요. 두껍고 윤기가 흐르는 짙은 녹색 잎사귀 사이로 피어난 붉은 동백꽃은 황량한 겨울 풍경 속에서 독보적인 생명력을 자랑합니다.2. 구차하지 않은 완전한 추락, 서늘한 지조동백은 꽃잎이 한 장씩 흩날..

[시로 읽는 숲과 꽃이야기] 솜털 쓴 숲속의 요정, 노루귀

아직 봄이라 부르기엔 쌀쌀한 3월의 산비탈, 낙엽 사이로 빼꼼히 얼굴을 내민 아주 작은 꽃이 있습니다. 잎보다 먼저 피어나 숲에 가장 먼저 봄의 문을 여는 전령사, 바로 '노루귀'입니다.1. 솜털 보송한 아기 노루의 귀를 닮은 꽃이름의 유래미나리아재비과(Ranunculaceae)의 여러해살이풀인 노루귀(Hepatica asiatica Nakai)는 그 이름의 유래가 무척 재미있습니다. 꽃이 피고 난 뒤 깔때기 모양으로 둥글게 말려서 나오는 어린잎의 뒷면에 하얀 솜털이 빽빽하게 나 있는데, 그 모습이 영락없는 '노루의 귀'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 다채로운 색의 향연키가 작아 눈여겨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쉽지만, 무리 지어 피어난 꽃색은 무척 다채롭습니다. 순백색부터 연분홍, 진분홍, 보라색,..

[시로 읽는 숲과 꽃이야기] 얼음 곁에서 피어난 백설의 요정, 너도바람꽃

차가운 골바람이 솔솔 부는 산지 북쪽, 겨우내 얼어붙었던 계곡의 얼음이 채 녹기도 전에 눈처럼 하얀 꽃이 피어납니다. 세 치도 안 되는 작은 키로 언 땅을 뚫고 올라와 봄을 알리는 앙증맞은 요정, '너도바람꽃'입니다.1. 짧지만 강렬한 생애, 숲의 요정너도바람꽃(학명: Eranthis stellata Maxim)은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입니다.따뜻한 양지바른 곳을 마다하고 산지의 반그늘 계곡 근처에 터를 잡습니다.3~4월이면 덩이줄기에서 잎과 꽃자루를 밀어 올려 하얀 꽃을 피우지요.이 꽃은 '스프링 이페머럴(Spring ephemeral, 봄꽃 요정)'이라 불리는 식물들처럼 지상에서 머무는 시간이 매우 짧습니다.6월이 되어 2~3개가 짝지어 있는 반달 모양의 골돌 열매가 익고 나면, 잎과 줄기는 흔..

[시로 읽는 숲과 꽃이야기] 사월의 산역(山役), 자줏빛 연지 바른 '얼레지'

사월의 숲은 깊어갈수록 화려해집니다. 그중에서도 전국의 높은 산 풀밭에서 얼룩무늬 치마를 두르고, 꽃잎을 뒤로 바짝 말아 올린 채 고개를 숙인 얼레지(Dog-tooth Violet)는 단연 숲의 귀족이라 불릴 만합니다.1. 기다림이 꽃이 될 때첫 번째 시에서는 산굽이를 돌아 당신(꽃)을 만나러 가는 설렘과 고단함, 그리고 마침내 마주한 꽃의 다정함을 노래합니다.얼레지 산 굽이굽이 넘어당신 만나러 간다헤어진 날 까마득해어여쁜 얼굴 가물가물한데길가 노린재나무 위 사위질빵 덩굴이내 마음처럼 칭칭 얽혀 있었지 사월이 깊을 대로 깊어진 날성긴 가지 사이 쏟아지는 햇살에꽃잎 대여섯 장 살포시 말아 올린 얼굴당신 대하듯 보고 또 보았다 얼레지를 닮은 당신자줏빛 입술에검붉은 연지 바르고 기다릴까비탈길 급히 오르느라숨이..

반응형